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원대보름에 한 해 동안의 부스럼을 예방하고 만사태평하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아 밤, 호두, 은행, 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딱딱한 열매는 치아가 약한 어린이와 노인이 깨물면 치아 건강에 좋지 않다.

이성복 강동경희대병원 보철과 교수는 "우리 선조들은 치아의 건실함을 건강의 척도로 삼았다. 그래서 부럼 깨기를 통해 치아의 이상 유무를 알아보고자 했다"며 "하지만 최선을 다해 부럼을 이로 악물어 깨뜨리는 동안 치아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받게 될 수 있다. 실제 정월대보름 부럼 깨기로 인해 치아가 손상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치아마모, 서양인보다 빨리 시작

마른 오징어, 쥐포 등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즐겨 먹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20대부터 이미 서양인의 30대에 해당하는 치아 마모를 갖고 있다. 따라서 40대 중반쯤에 이르러서는 서양인의 60대에 해당하는 치아 때문에 음식을 씹을 때 ‘시큰거림’을 호소한다.

40대 이후에 치과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 육안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치아가 씹을 때 자꾸 아프다고 말한다. 그 아픈 정도는 심할 경우 생활 의욕까지 저하시킨다.

김치, 깍두기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 있는 일반적인 음식물들을 씹기 위해서는 최소한 70~100kg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턱을 악무는 힘이 200kg 이상을 기록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정도 되면 치아가 바스러지고 깨져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기껏 힘들게 치료받았던 치아보철물(금, 포세린 크라운)까지도 으깨지면서 파손되기에도 충분한 힘이다.

이성복 교수는 "음식을 씹을 때 예리한 치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아에 특수한 약물이나 광선을 이용해 검사하면 표면에 살짝 금(파절선, crack line)이 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육안으로 발견하기 힘든 미세한 균열로 음식을 씹을 때마다 치아 신경관을 자극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아 균열, 치료 시기 놓치면 방법 없어

사람의 치아는 하루 중 음식물을 섭취하는 2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그외 시간은 치아 사이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어야 치아와 주위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을 수 있다.

   
▲ 50대 초반의 남자. 정월 대보름날 부럼을 깨물다가 치근(치아 뿌리부분)이 수직으로 파절되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사진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힘들거나 초조할 때마다 이를 악무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 30초만 치아를 악물고 있어도 금방 안면 및 턱주위 근육에 피로가 오며 저작근통이나 두통을 유발하게 된다.

이때 유발된 근육통은 쉽게 해소시킬 수 있겠지만, 치아 자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손상이 바로 치아에 발생하는 금(파절선, crack line)이다. 씹을 때마다 치아가 심하게 새큰거리는 증상과 더불어, 치아뿌리까지 충격이 파급되어 결국 대개는 치아신경을 죽이는 치료(근관 치료, canal treatment)를 받은 후 치아를 깎아서 금관을 씌워줘야 금(파절선)이 뿌리쪽으로 더 진행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 이 금(파절선)이 치아뿌리 쪽으로 진행되어 쪼개지기 때문에 결국 치아를 뽑아서 제거하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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